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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플링 요소 (신드바드x쟈파르)가 있습니다.

 신드리아의 여름 축제는 8월 둘째 주 산들바람의 날부터 시작된다.

 

잘 말린 토마토와 흰 당근을 푹 끓여낸 수프와 대추야자로 빚은 술, 그리고 다르부카와 경쾌한 피리소리. 여름이 높게 뜨는 일주일 동안 거리는 온통 손뼉 소리로 가득하고 깃발처럼 스커트가 나부낀다. 항구에서 왕궁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온통 노랗고 붉은 히비스커스 꽃이 흩날리고 나뭇가지는 주홍색과 보랏빛 색실로 겹겹이 장식해놓는다.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방문해야 한다는,

 

신드리아의 여름 축제였다.

 

축제로 인해 관광객이 늘어난다면 적자투성이인 신드리아의 재정 상태도 나아질 것이다. 쟈파르를 포함해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정무관이 올해 축제 준비를 위해 6월부터 만사를 제쳐놓은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저절로 완성되는 일은 없습니다. 조금 들어가 눈을 붙이는 게 어떻겠냐는 부관의 진심 어린 조언에 그는 짤막하게 답했다.

 

그리고 정무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도 더 섬을 찾아올 손님들을 수용할 방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신드리아의 특성상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부지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결국 한시적으로 제6지구의 미입주 부지와 상업 지구의 2층을 숙박 시설로 쓸 수 있게끔 만들었지만, 백양탑에서 예측한 수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온다면

(분명 그건 즐거운 일이지만!)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식량과 물 또한 마찬가지다. 신드리아의 토양은 기본적으로 소금기가 있어, 서대륙이나 황 제국에서 보편화 되어 있는 대단위 농업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축제 시즌을 대비해 밀가루와 쌀, 병아리콩과 소금에 절인 고기 같은 보존 식을 충분히 수입하도록 했으나

풍랑이나 수출량 제한 등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것으로는 아쉽게 하지 않고자 하나, 모든 일이 쟈파르의 계획대로만 돌아간다면 백양탑에 신드리아의 등대라는 별명은 붙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적어도 술에 한해서는 축제 기간 동안 코가 비뚤어지게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넉넉하다는 것이다. 술을 각별히 사랑하는 누군가 덕분에 신드리아는 아말로니아나 칼렘 등 와인 명산지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주조술이 발달해 있었다. 파파고레야와 사포테, 카피르 라임 등의 풍부한 열대 과일을 이용해 만든 술은 섬을 방문한 외교관이나 상인들에게 크게 호평을 산 바 있다. 정무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신드바드가 지하실에 숨겨 놓은 나무통만 해도 마흔 개가 넘으니 적어도 술이 모자라다는 불평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외 세부적인 부분-치안 유지와 검역, 왕의 연설문과 연회 만찬의 순서-이 모두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정무관은 자리를 뜨기로 했다. 보고해야 할 일이 있다면 3층으로 오세요. 짤막한 메모를 책상 위에 놓아두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대충 휘갈겨 쓴 탓에 마지막 철자가 종이 밖으로 흩어진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더 이상 정무관이 필요한 일은 없을 테니까. 반쯤 열린 창밖으로는 축제의 끝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밤하늘 위로 뚝 뚝 흐르고 있었다.

 

 

백양탑 3층에는 작은 휴게실이 하나 있었다. 연이은 격무로 인해 한밤중에도 문관들이 귀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급한 대로 빈 문서고에 간이침대를 놓고 얇은 시트를 덮은 일종의 임시 휴게실이었다. 빈말으로라도 결코 쾌적하다거나 편안하다고는 할 수 없는 환경이었으나,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그 정도 불편함은 개의치 않을 정도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오늘의 정무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전년보다도 한층 더 화려해진 축제 덕에 백양탑 문관들 또한 앞 다투어 일을 마친 후 성 아래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며칠 전부터 불꽃놀이를 손꼽아 기다렸다는 서기관 울마르와 올해는 꼭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예정이라는 비스마까지, 사람들은 제각각의 기대를 품고 들뜬 표정으로 시가지로 이어지는 흰 돌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유감스럽게도 정무관은 그들과 함께 8월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에게는 -축제의 성공적인 개최와 맞바꾼-적절한 휴식을 누릴 권리가 있었다. 햇볕에 잘 말린 침구와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저녁 바람, 그리고 조용히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어림잡아 30분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쟈파르는 베개 위치를 고치며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창문 밖에서는 희미하게 노래와 웃음소리가 난다.

꼭 파도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새하얀 물보라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항구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의 소매를 잡은 어린 소년과 예의 있게 행동하라며 아이를 나무라면서도 반갑게 맞아주던 그 애의 어머니, 반쯤 부서진 길을 복구하는 인부들과 좌판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과일을 말리는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쟈파르가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는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또한 그를 잊지 않았다. 꼭 장기 출장이라도 다녀오신 것 같네요. 왕궁 중정으로 이어지는 흰 돌계단을 다시 밟았을 때 근위병이 말했다. 자리를 비웠던 시간이 무색하게 그의 책상은 집무실 한켠, 쟈파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살짝 기운 왼쪽 모서리와 은방울꽃 장식이 달린 잉크병, 나뭇결 사이에 밴 종이 냄새.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즐겨 사용하던 도자 컵받침까지 남아 있는 모습에 쟈파르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 그 말에 지나가던 시녀는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었다.

돌아오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다가오는 8월에 축제를 열자는 의견에 정무관이 처음부터 동의했던 건 아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신드리아의 여름은 연중 가장 무더운 계절이다. 관광객은 차치하더라도 섬 주민들도 낮 동안에는 야외 활동을 자제할 만큼 더운 날씨를 자랑하는 계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먼 바다에서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불어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오스티아 등 서대륙에서 오는 여객선이 풍랑 때문에 발이 묶인다면 축제 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쟈파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건 축제 찬성파의 의견이 상당히 강경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오랜 친우인 드라콘과 그의 아내인 사헬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네가 걱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나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네. 그는 항상 그러하듯 차분한 어조로 주장했다. 항구 보수와 무더위에 대해서는 미리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다는 말에는 쟈파르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또한 여름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축제를 준비하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발단은 부족한 예산과 인력을 이리저리 끌어 모은 다음 우선순위를 배정하는 일 부터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무관과 백양탑에서 일하는 문관들은 적은 예산으로 일을 진행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빠듯한 기간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씩 모양새를 갖춰가는 시가지를 보면서 쟈파르는 벅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오를 가려 줄 차양막에 쓰인 보랏빛과 주홍빛 염료는 신드리아 근교 해안가에 서식하는 조개를 채취해 만든 것이다. 타이로스 산 염료만큼이나 진한 색을 낼 수 있어 직물이나 공예품을 생산하는 데 쓰일 수 있을 거라고 직공들이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이번 축제에 선보인다면 또 수출길이 열릴지도 모르지요. 마른 손목의 노인이 비스듬하게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국적인 향미의 음식 또한 축제에서 빠질 수 없다. 고온 다습한 기후 탓에 식재료가 쉬이 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식당가에서는 저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서슴없이 내놓았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바짝 말린 대추야자와 천일염에 푹 절인 수죽, 무화과와 월귤을 으깨 만든 스프레드는 그 중 일부였다. 그 중에서도 무화과 스프레드를 넣은 납작한 빵-일명 임금님 빵이라고 상인들은 부르곤 했다-이 특히 맛있다고 사헬이 귀뜸해주었다.

 

햇볕에 부서질 듯 하얗게 새로 칠한 문에는 집집마다 플루메리아나 재스민을 엮어 만든 화환이 걸려 있었다. 화관에는 때때로 유백색 조개껍데기나 열대 새의 깃털, 그리고 광택이 없는 천이 한데 묶여 있기도 했다. 비바람에도 쉬이 풀리지 않을 듯 단단히 묶인 무명천 위에는 한없이 소원에 가까운 기도들이 담겨 있었다. 정무관님도 하나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작년 여름에 새로 들어왔다는 문관이 그에게도 천을 한 조각 건넸다.

 

쟈파르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깃펜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축제 마지막 날 밤이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절도, 축제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아침은 축제 뒷마무리라는 명목으로 특별히 모든 왕궁 사람들에게 하루 휴가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정무관은 그와 같은 관행을 예의 바르게 거절했고 당직을 자처했다. 네가 자꾸 그러면 아랫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휴가를 쓸 수 없다고. 잔뜩 찌푸린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쟈파르에게 그런 잔소리를 하던 사람은 현재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지금쯤 자기 술을 다 마셔 버렸다며 울상을 짓고 있겠지. 눈썹을 한참 찡그리고는 자기가 어떻게 모은 술인데 정말 너무하다며 볼멘소리를 할 것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생기 넘치는 표정을 지을 걸 떠올리자 쟈파르의 입가에 느린 미소가 떠올랐다. 시끄럽네요. 그게 불만이라면 일찍 돌아오셨으면 될 것 아닙니까. 상상 속에서 쟈파르는 신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의 결말은 매번 꼭 같았다.

 

한때는. 쟈파르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이라고 까지만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했던 적이 있었다. 첫 번째 권속이자 왕의 오른팔, 가장 오래된 친우라는 지위는 황금으로 만든 월계관이나 메달, 붉은 색 토가보다도 그를 자랑스럽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무엇보다도 그를 초라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쟈파르는 이미 경험으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쟈파르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알라딘 일행이 전해준 소식은 결코 희망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쟈파르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쟈파르는 미처 정제되지 못한 감정들이 손바닥 위로 흘러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래알처럼 작고 조개껍데기처럼 날카롭지만 낡은 밧줄처럼 부식된 감정들이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마다 그 감정들은 만조처럼 그의 해변으로 밀려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쟈파르는 그 파편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8월의 밤은 옅은 재스민 향처럼 서서히 창문 위로 내려앉았다. 마지막 타종이 친 지는 이미 2시진도 넘었으나, 창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내일 아침으로는 레몬을 곁들인 차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정무관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허술한 목조 기둥에서는 간간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작은 발걸음이 들렸다.

 

빠르고 힘 있는 걸음걸이였다.

그리고 쟈파르는 꿈속에서도 그 발소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럴 리 없다. 쟈파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으니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 어쩌면 지금 그는 꿈속인지도 모른다. 꿈은 으레 꿈꾸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 마련이니. 하지만 그 발소리는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뚜렷했고,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쟈파르가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발걸음은 복도를 따라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방 문 앞에서 멈추었다. 걸쇠는 걸려 있지 않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문을 열어주는 걸 기다리기라도 하듯 발소리의 주인은 꿈적도 않고 멈춰 있었다. 쟈파르는 멍하니 텅 빈 문고리를 내려다보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긴 그림자가 나무문 밑으로 느리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돌아오고 싶었던 걸까. 쟈파르로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위대한 방랑자와 영웅들이 으레 그러하듯, 자유로이 세상을 떠도는 것이 그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상회의 대표가 된 것도 한 나라의 왕이 된 것도 그가 간절히 원해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신드바드는 충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바다 위에서 여생을 보내는 선원이든 세상의 끝을 보고 온 모험가든 소일거리로 낚시를 하는 은거자든,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쟈파르는 신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신드리아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라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쟈파르는 고개를 들어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에게서는 옅은 소금 냄새가 났다. 꼭 바다를 헤엄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짙은 남보랏빛 머리카락은 흠뻑 젖은 채 어깨에 달라붙어 있었다. 정돈하는 걸 잊어버린 듯 조금 길어진 눈썹과 피곤이 역력한 뺨, 그리고 반쯤 찢겨나간 소매. 그것도 모자라 신발은 어디에 놓고 왔는지 발등에는 군데군데 긁힌 상처가 있었다. 그러나 온통 흐트러진 와중에도 불구하고 진한 호박색 눈은 여느 때처럼 쟈파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머리로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입이 움직였다.

 

"...방을 잘못 찾으신 것 같네요."

"아니. 맞게 찾아왔어."

 

그림자는 마치 속삭이듯 답했다. 그 목소리에서는 은은하게 재스민 향이 난다.

 

"여긴 음식도 없고 술도 없는데요."

"네가 있잖아.“

 

그리고 신드바드는 미소 지었다.

 

축제를 열기로 했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섬을 만들겠다고 그는 맹세했다. 세상의 남쪽 끝에는 여름 내내 흥겨운 주르나 연주와 야자술, 그리고 라일락 향이 끊이지 않는 섬이 있다고.

 

당신이 설령 기억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멀리 임차크에서부터 암흑대륙까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모든 도시와 항구에 녹색 깃발을 단 배를 보냈다.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를 타고 신드리아를 방문할 수 있게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항구에서 이어지는 도로 한 켠에 하얀 돌을 새겨 넣었다. 등불이 없는 빈 새벽과 소나기가 쏟아지는 밤에도 무사히 왕궁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끝나지 않는 여름. 섬에서 처음 유성우가 쏟아져 내린 밤 그는 쟈파르에게 속삭였다. 그 속삭임은 마치 새벽처럼 고요하고 황혼처럼 감미로웠다. 마주잡은 손 위로 별이 떨어진 순간 그는 자신이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그 사실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자신만만한 호박색 미소가 그에게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쟈파르는 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사랑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을 겪고 난 다음에도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세상에는 때때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쟈파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여름을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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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ha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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